지난 7월 정부는 누더기 같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번 중대재해법 시행령에는 노동계와 정의당이 수차례 지적했음에도 반영되지 않은 문제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먼저 점검 위탁 문제입니다. 시행령대로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 점검을 외부에 위탁할 경우, 많은 사업장에서 점검 미비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즉각 위탁업체에 전가하려 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사용자는 페이퍼로 보고 받은 것만으로 점검 의무를 충분히 이행한 것이 되어 아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애초에 모법인 중대재해법 제정 당시 5인 미만 적용 문제가 가장 크게 논란이 됐다는 점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두 거대 정당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댄 것이, 해당 사업장들의 경영 여건이 열악하여 중대재해법 상의 의무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5인 미만은 배제하고 50인 미만은 법 적용을 유예했습니다. 그렇다면 의무를 이행할 여력이 있는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될 이 시행령은 당연히 사용자의 점검 의무를 무겁게 규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시행령은 점검의 외주화를 허용해 중대재해법 한번 더 무력한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로는 직업성 질환에 대한 극히 관대한 해석입니다. 시행령은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 중독성 질병 24개로 제한하여 사실상 질병에 의한 중대재해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습니다. 정부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로 인정하면, 고혈압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고령층의 취업이 제한될 수 있다는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 1명이 작업장에서 과로사했다면,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장에는 과로사 이전에 뇌심혈관계 질환의 잦은 발생이라는 보이지 않는 경고장이 보내져 있습니다. 그 경고장을 무시할 때 결국 노동자는 과로사로 사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시행령에 따르면 1년간 급성중독으로 쓰러진 사람이 3명인 이상인 경우는 중대재해이고, 과로로 심정지나 심근경색이 온 사람은 죽지만 않으면 5명이건 10명이건 중대재해가 아니라고 합니다. 죽음을 막겠다는 이 법의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직업성의 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도시철도에서 일하는 운수노동자입니다. 도시철도 노동자들은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지난해인 2020년만 하더라도 부산교통공사에서 2명의 노동자가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모두 업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행령대로라면 암투병을 하고 있는 노동자가 사업장에 아무리 많아도, 아직 사망하지 않았다면 중대재해가 아니게 됩니다. 중대재해법은 질병재해의 발생 자체를 처벌하는 것도 아니고, 의무 이행을 하지 않았을 경우 처벌합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질병재해의 범위를 좁힐 경우 사용자가 그 누가 질병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습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결론적으로 그 디테일에서 사용자로 균형추가 넘어간 잘못된 법입니다. 모법의 법문에 다 담지 못할 행정 행위의 기준이나 각종 규율 범위 등을 구체화하는 것이 시행령이라면, 중대재해법 시행령에서 이 구체화의 목적은 바로 중대 재해로 인한 피해의 최소화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행령 전반은 피해의 최소화가 아니라 사용자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맞춰져 있습니다.
정부의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대한민국이 안전사회로 가는 길에서 구체적 길잡이가 될 수 없습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안전사회로 가는 길에 바리케이트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정의당의 이번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시행령 개정에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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